Face & Imagination -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Face and Imagination, (« Eolgul, gamchul su opneun naemyeoneui jido »,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Imagination" series from the Institute for Development of Imagination Research, Yonsei University, 282 p., Books 21, Seoul, August 2011 (in Korean). 2nd edition October 2014.
눈, 코, 입, 머리가 있다고 다 얼굴일까?
얼굴, 육체와 상상이 만나는 특별한 공간!
공자는 《효경》에서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가르침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오히려 개인의 행복을 위해 얼굴에 손을 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와 사회와의 소통, 나와 집단과의 관계 설정에 따른 다양한 얼굴 변형이 아니라, 오로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생존의 질을 높이기 위해 거리낌 없이 얼굴에 칼을 대는 것이다.
얼굴은 왜 이런 역사를 갖게 되었을까? 신비롭고 두렵기만 했던 자연이 과학의 힘으로 하나씩 벗겨지고, 그에 따라 사회제도가 발전되고, 거기에 대응하는 인간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얼굴은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의 바탕이 되며,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고 또 수많은 제도와 유행, 사상 등에 그 형태를 부여하는 위대한 인간의 상징”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인류가 급격한 변화를 겪을 때마다 그 참모습은 먼저 인간의 얼굴에 나타난다. 따라서 얼굴에는 사회와 집단 그리고 개인의 역학 관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얼굴에 대한 성찰은 다른 어떤 연구보다 인간 사회를 가장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얼굴에 상상력이란 잣대를 들이밀며 고찰해야 하는 이유다.
의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성형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왜 굳이 얼굴의 참모습을 다시 화두로 삼아야 할까? 그것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든 제도가 점점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출발점은 바로 우리 인간 본연의 얼굴을 되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얼굴을 대하는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눈, 코, 입, 머리가 모여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걸 모두 얼굴이라고 하지 않는다. 얼굴을 얼굴이게끔 하는 것들, 그 철학적이고도 역사적인 심오한 세계가 이 책에 펼쳐져 있다.
얼굴은 ‘인간다움’의 상징이다.
우리 모두에게 얼굴이 있다는 사실은 얼굴의 존재를 너무 당연시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얼굴 자체는 자연적인 신체 기관의 하나가 아니라 문화마다 다르게 구축되는 개념의 하나다. 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원주민은 자신의 육체에 딸린 얼굴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고, 또 다른 사회에서는 얼굴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가면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 얼굴은 사실 최근에 발명된 ‘발명품’이다.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얼굴에는 사회적·계급적 차별 구조가 덧씌워졌고, 이로 인해 얼굴은 단순히 육체 일부가 아니라 사회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각종 실험의 대상이 된다. 결국 얼굴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얼굴 훼손(de-faceisation)’을 당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얼굴의 모든 것을 다루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와 가면 등의 도구, 그리고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철학과 정신분석, 미학, 인류학 등의 관점을 통해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먼저 1부에서 저자는 얼굴의 구성요소인 눈, 코와 콧구멍, 입, 귀, 머리와 머리카락부터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이들이 모여 구성된 얼굴은 상징물인 동시에 전 세계의 인간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관계나 구조를 창조하는 또 다른 현실로 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구조를 통합하고 물질적인 산물에 활용하는 방식은 사회마다 다르다. 저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고대 신화와 가면 사회, 서양 연극 등을 면밀히 고찰한다. 또한 인간이 ‘걸친’ 최초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가면을 쓰는 행위를 개인이 집단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결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가면이 지닌 사회적·상상적 의미를 밝힌다.
2부에서는 얼굴의 사회과학적인 측면을 고찰한다. 외모 측면에서의 얼굴은 개인적 자아의 개념과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부분인 ‘몸의 무의식적 이미지’라는 개념과 관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은 원시 사회든, 고대 사회든, 현대의 포스트모던 사회든 관계없이 모든 사회에서 개별적 인간과 사회적 인간의 다양한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3부는 얼굴을 소재로 삼은 동서양의 예술 세계를 다루고 있다. 예술은 철학 이상으로 합리적 사고는 물론 정신적 산물의 모든 층위에 구조를 제공하는 상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대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연구하기에 좋은 시험장이기 때문이다. 3부에서는 특히 골상학과 체질 인류학을 앞세워 인간이 다른 인간의 얼굴을 어떻게 뭉개고 이용하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얼굴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의미 부여를 거쳐 도달한 4부에서는 20세기 이후 얼굴에 나타난 참혹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얼굴은 박탈의 결과물이자 역사와 경제, 이데올로기 등의 연속적인 작용을 거친 공간이다. 즉, 20세기 이후부터 얼굴은 실존적 혼란이 표출되는 곳이었다. 그런 얼굴에 우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 본연의 얼굴을 되돌려주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얼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실재 얼굴을 바라볼 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세상에서 그 어떤 실재보다 정신적인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관상학과 골상학이 주류를 이루었던 우리 사회에 얼굴에 대한 현실적 상상력을 잔뜩 불어넣은 이 책은 우리에게 얼굴을 통해 들어가는 내면의 세계를 안내해주는 진정한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얼굴에 칼을 대는 게 현재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게 진정 인간의 완성을 위한 것인지, 그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저자 소개
지은이_ 벵자맹 주아노Benjamin Joinau
소르본 파리 4대학에서 인문학(라틴어와 그리스어 연구)과 철학을 전공한 벵자맹 주아노는 1994년 군 복무차 해외 파견교사를 선택해 한국에 왔다. 우연히 서울에 들렀다가 매료되어 정착을 결심했고 지금도 서울에 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에 머물렀던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국학으로 옮겨갔다. 한국어를 익힌 후에는 한국 문화를 대중화하는 다양한 작업과 문학번역에 참여했다. 2000년에는 한국의 상상계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문화 인류학으로 학문 분야를 바꿨다.
처음 몇 년간은 현대 한국 상상계를 이해하는 데 소중한 요소인 20세기 전반의 한국 시를 연구하다가 2005년부터 한국의 음식 문화를 사회적, 인류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사 논문을 위해서 남북 영화를 중심으로 이종성(heterology)의 상상을 연구했다. 이 외에도 한국의 상상계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키워왔다. 앞으로 이 상상계에 관한 일반 이론의 평가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한국과 동아시아에 관한 책들을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프랑스 출판사 아틀리에 데 카이에(l'Atelier des Cahiers)의 디렉터이며 한국의 요리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벵자맹과 함께하는 맛있는 여행>(아리랑 TV)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프랑스어는 물론 영어, 한국어로도 많은 책과 논문을 발표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여행안내서인 《Petit Futé Corée》, 《Guide Vert Michelin Corée》 그리고 서울에 관한 에세이 《Séoul, l’Invention d'une cité》, 프랑스 요리 문화에 관한 《두 남자 프랑스 요리로 말을 걸어오다》, 황순원의 번역작품 《Les Descendants de Caïn》 등이 있다.
옮긴이_ 신혜연
경희대학교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바른번역 아카데미를 수료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번역학으로 석사학위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미술의 세계》《무엇을 위한 그래픽디자인인가》《황금살인자》《청년의사, 죽음의 땅에 희망을 심다》 등이 있다.
●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는…
디지털 시대의 문화현상들을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매체학, 과학기술학 등의 초학제적 연구를 통하여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테크놀로지와 상상력, 인간과 기계가 조화를 이루는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1998년에 설립되었다. 미디어아트연구소는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에서 위기에 처한 인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영화, 디자인, 미디어아트, 문화콘텐츠, 문화기획, 문화정책, 과학기술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인문학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오늘날 세계정신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는 ‘지식의 대통합과 융합’을 선구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최근 연구소는 상상력개발센터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상상력스쿨’, ‘상상력 CEO스쿨’의 실험적 운영을 통해서 융합형 상상력 교육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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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 & Imagination -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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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들어가는 말 _ 얼굴 너머의 얼굴
1부. 신화 속의 얼굴에서 인간의 가면까지
01 얼굴은 눈, 코, 입, 귀, 머리의 집합체
얼굴 자체가 상징은 아니다|눈, 빛으로 세상을 보는 곳|코, 냄새로 세상을 맡는 곳|입, 숨 쉬고 빨아들이고 먹는 곳|귀, 말과 말의 힘을 받아들이는 곳|머리,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곳|얼굴은 상징이 모인 조각보
02 그리스 신화 속 얼굴의 상징
페르세우스의 모험|메두사 얼굴의 진실
03 가면, 인간이 걸친 최초의 얼굴
영혼을 되살리는 원시 사회의 가면 |그리스 가면의 양면성
04 가면과 얼굴의 이중주
디오니소스 숭배가 연극으로 탄생하다|감정, 드러내거나 감추거나|서양 가면과 하회탈의 공통점|광대가 벗긴 가면 속의 얼굴
05 다양한 가면의 세계
얼굴을 가리기 위한 가면|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가면|보호하기 위한 가면
2부. 얼굴의 참모습 들여다보기
01 유교 사회가 버린 변강쇠
한국판 고르곤 형상들|변강쇠 이야기|변강쇠와 페르세우스의 차이|변강쇠의 거세가 상징하는 것|질서를 깨려는 그들에게 내린 저주
02 거울, 얼굴에 대한 의식을 바꾸다
거울 없는 사회에서 나는 누구?|타인에 의해 나는 만들어진다|나는 거울을 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03 가면의 나에서 개인의 나로
역사와 사회가 만든 ‘자아’ 개념|혼자 있을 때 얼굴은 없다
04 복잡한 얼굴의 세계
얼굴아, 얼굴아, 너 진짜 뭐니?|얼굴, 인간성을 증명하다
3부. 초상화에서 사회적 통제까지
01 미술은 얼굴을 어떻게 다루었나?
얼굴은 미술의 금기|예수의 얼굴도 상상의 대상인가?
02 동서양 초상 미술의 역사
동양 미술, 개인에서 가족으로|서양 미술, 이콘에서 자화상으로
03 얼굴 통제와 형식 부여
골상학이 앗아간 얼굴|과학으로 자행된 얼굴 말살|부르주아에게 얼굴을 부여하다|가면의 귀환
4부. 얼굴 훼손과 현대적 상상
01 현대 미술에 나타난 얼굴
미술과 영화에서의 얼굴 훼손|결코 평범하지 않은, 극단적인 얼굴들
02 얼굴 가치의 회복을 위하여
전쟁, 얼굴의 환상을 파괴하다|주체의 파멸|점점 더 일그러지는 얼굴|잃은 것은 정신적 가치
나가는 말 _ 얼굴의 신비
참고문헌
주
● 본문 중에서
흥미롭게도, 얼굴 그 자체는 사실상 어떤 상징이나 원형이 될 수 없다. 머리나 입, 눈은 그럴 수 있어도 얼굴은 그럴 수 없다. 왜일까? 이 이야기는 나중에 “얼굴은 지식의 총체 그 이상”이라고 했던 프랑스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를 다루면서 다시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류학 연구에서도 어느 정도는 답을 얻을 수 있다.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 섬의 원주민인 카낙족 노인의 말을 상기해보자. 그는 자신들을 연구하던 한 연구원에게 “당신네(백인)가 우리에게 가져온 것은 육체였다”고 말했다. 서양 문명을 접하기 이전의 카낙인들은 우주와 육체를 달리 보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있어 육체는 자연 세계의 일부였다. 그러다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육체가 분리된 실체라는 ‘관념’을 갖게 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얼굴’이라는 개념이 생각처럼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본질적으로 얼굴이 왜 우리의 심오한 상상계 안에서 상징물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해준다.(18쪽)
이 신화에서 우리는 페르세우스가 최소한 두 번 태양의 상징과 관계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 바로 그 아버지가 제우스라는 점과 모험의 결과로 페가수스를 얻었다는 점이다(페가수스는 제우스에게 벼락 화살을 날라다 준다). 태양의 영웅인 그는 태양이 지는 곳, 서쪽 땅에 사는 괴물과 싸워야 한다. 어떤 분석가는 이 신화가 ‘겨울’에 맞선 생명력의 승리를 담은 이야기라는 그럴듯한 말을 한다(가계도에서 이미 보았듯이 고르곤은 대지와 연관된 괴물이다. 그리고 스쳐 지나는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하지만 더 흥미를 끄는 것은 이 신화 속 머리의 역할과 얼굴 상징이다. 우리는 날개 달린 마법의 신발을 신고 하늘을 나는 페르세우스에게 주어진 임무(메두사의 머리를 베는 것)에 내포된 수직성과 태양 친화성(solar tropism)에 주목해야 한다. 메두사의 머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과 수퇘지의 이빨을 가진 존재로 매우 잔인하고 동물적이다. 하지만 페르세우스의 역할은 그 야성을 제압해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반짝이는 둥근 방패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태양의 거울이 여기서는 칼보다 더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메두사는 이 태양을 닮은 방패에 비친 자기 자신,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얼굴, 즉 끔찍한 자아를 보고 ‘얼어붙는다’.(44쪽)
디오니소스 숭배에서 연극이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직접적인 연극적 행위와 ‘존재’에서, 우리는 디오니소스 세계가 가지고 있는 본질 즉, 배우는 존재하지만 그 배역은 존재하지 않는 이중성(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의 만남, 돌이킬 수 없는 운명, 그리고 구분하기 어려운 현실과 환상 등에 감동한다. 오토의 말처럼, “이 이중성은 가면에 그 상징성이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가면을 쓴 사람(배우)은 누군가 다른 사람, 즉 ‘자신이면서 또한 다른 누군가’인 신이나 영웅을 대신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는다. 이 배우는 가면을 쓰고 춤을 추던 고대 그리스인의 현대판이다. 이들은 수호신과 소통하는 황홀경이라는 유산을 공유한다. 다른 이의 얼굴을 입은 그는, ‘이중적인 존재(디오니소스)’의 영이 내려주는 은혜에 감화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 공동체의 주목 하에 그가 구현하고 있는 부재-존재의 신비는 기적이 된다. 하나의 미술 작품에 불과한 가면이 실체가 되고 육체가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76쪽)
이 유교 윤리에 따르면, 여성의 매력은 당연히 위험하고 조절되어야 하며 ‘가려져야’ 한다(조선 시대에 상류층 여인들은 집 밖을 나설 때 얼굴을 가렸다). 과부는 재혼할 수 없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공인된 부인과 살지만 부인이나 부인의 매력과는 분리된 채 점잖게 살아야 한다. 남자는 아버지의 법(장승)을 존중해야 하고, 스스로도 아내에게 강한 남자, 즉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이런 역할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성기가 유발하는 치명적인 유혹은 통제를 받는다. 섬세하고 위험한 용모는 적당한 사회적 역할이라는 가면에 가려지고, 이 ‘얼굴들’ 또는 적당한 가면은 모두를 위한 보호 도구다. 하지만 옹녀나 변강쇠처럼 이 질서를 깨려는 이들에게는 저주다.
지금까지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이 유명한 한국 설화에 대해 다른 식의 해석을 제안하기 위해서다. 메두사 신화와 효과적으로 비교하기에 알맞고 흥미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가면과 성(性), 정체성, 얼굴 간의 깊은 무의식적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설화적 예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다음 장에서 전개하고자 하는 심리적, 사회적 정체성의 정의에 있어서 ‘얼굴’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119쪽)
말 그대로 독특한 육체적 형태는 다른 그 무엇과도 ‘동일성’이 없으므로, 육체 의식(‘자아감’)에 기반을 둔 자기애적, 개인주의적 자아에는 ‘정체성’을 부여할 수 없다. 육체적 모습에 기반을 둔 개인에게는 (여권 사진이 그렇듯) ‘다른 점’이나 특이한 점을 열거함으로써 개성이나 고유성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의 개성의 근원일 뿐 정체성의 근원은 아니다. 여권 사진 속의 내 얼굴이라 하더라도 경찰의 검문이나 출입국 심사를 받을 경우에는 ‘본래 얼굴’(내 실제 얼굴)과 비교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이는 특별한 점을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권에 (나의 행정적 ‘정체성’에 대해) 적혀 있는 것의 ‘정체성’과 그 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나)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정의하자면, 정체성은 ‘자신만의’ 특징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거나 다른 범주에 드러내는 것이다. (중략) ‘가면’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잃게 되는 독특한 특징을 교환할 때, 그 가면은 우리에게 사회적 역할(지위)과 책임을 부여한다. 우리는 무엇에 ‘속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공적인 특징을 부여받는다. 이런 식으로 보면, 인간은 마치 가면을 통해 의미를 얻는 텅 빈 껍데기 같다. 인간 개인이 어떤 하나의 역할이라는 사회적 자아로 격하되는 사회에서는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136~137쪽)
이제부터 살펴보겠지만, 기독교에서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대해 아주 오래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알다시피 그는 신성과 인성 두 가지 모두를 갖고 있다(앞서 얼굴과 가면, 기호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했던 이중성이 흥미롭게도 여기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그의 인성을 고려할 때, 목수의 아들로서의 예수는 언젠가는 죽을 운명을 가진 한 인간으로 표현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당해 보인다. 특히 박해를 받았던 초기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그리스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물고기 등의 추상적인 상징으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곧 신의 아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났고, 이는 일련의 오랜 논쟁을 불러왔다. 예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신의 자식이므로, 예수를 그리는 것은 신의 얼굴을 그리는 것과는 다르지 않을까? 그리고 또 다른 질문 하나, 예수는 잘생겼을까, 못생겼을까? 육체적으로 매력적인 이미지가 아니면서도 잘생길 수 있을까? 못생겼다면, 그 신적 완전성이 훼손되지는 않을까?(170~171쪽)
부랑자 등의 도시 대중이었다. 이 도시 대중의 출현과 함께, 부르주아 계층은 위협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권력을 재확인해야 했고, ‘위험한’ 노동 계층의 정체성과 행위를 통제해야 했다. 신흥 기술인 사진술은 이 일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였다. 이런 움직임을 이론화한 사람은 ‘타고난 범죄자’의 이상적인 모습을 설명하고자 했던 악명 높은 이탈리아의 정신의학자 체사레 롬브로소였다. 그의 생각은 범죄자들의 얼굴을 분류해 사회의 모든 ‘타락자들’(강간범, 도둑, 광인 등)을 더 잘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는 정체성과 골상학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그저 라바터의 이론을 발전시켜 범죄학에 적용한 것이었다.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범죄자를 찾아 (그들을 도시나 일정한 지역 밖으로 추방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한다는 것, 그리고 많은 증거를 찾지 않고도 범죄자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대부분 환상에 불과했음에도, 부르주아 계층은 이 ‘과학’에서 놀라운 수단을 찾아냈다.(206~207쪽)
얼굴의 표정은 사회에 의해 코드화된다. 사실, 인간의 감정은 전 인류가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보편적 언어가 아니다. 일본인이 얼굴에 미소를 띨 경우, 이는 존경의 의미나 당황의 의미 모두 될 수 있으며 반드시 즐거움이나 기쁨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장례식에서의 눈물이나 발작적인 울음 또한 실제로 슬퍼서 나오는 것 일 수 있지만 관습에 따른 행동일 수도 있다. 이렇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언어에서조차 우리는 사회가 정한 규범을 따른다. 사실, 사회는 종종 우리의 얼굴 표정까지 통제한다. 어떤 문화는 유난히 더 억압적이고, 또 어떤 성(性)은 다른 성보다 더 심한 압박을 받는다. 동북아시아에서 유교적 영향하에 사는 남자들은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표정한 얼굴은 침착함의 표시이자, 상식 있고 진지한(그래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정신의 표시로 여겨진다. 이 비표현적 가면은 물론 표면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기표현’을 중시하고 ‘투명성’의 개념을 배우며 자란 서구인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감정의 부재, 냉담함, 심지어 잔인함 등의 표시로 여기기 십상이다.(217~218쪽)
안면 이식술의 문제 중 하나는 수술이 동반하는 고통이나 위험 외에도 환자 본인이 새 얼굴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종종 짧게 정체성의 혼란이 오거나 심지어 정체성을 잃는 시기가 찾아오고, 그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정체성을 재구축하는 실질적인 과정이 따른다. 죽은 사람에게서 장기를 이식받는 경우, 환자는 때로 이런 정체성 재구축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안면 이식은 이 문제를 새로운 윤리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심장이나 간과는 다른, 누군가의 얼굴, 즉 눈에 보이는 기관을 환자에게 주는 수술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인간의 내면은 그대로다.(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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